2편. 여름, 무대, 그리고 어색한 기차 안의 침묵
영어와 첫사랑 같은 시절을 보내고,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어딘가에는 꼭 소속되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던 그때,
나는 얼떨결에 영어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무더웠던 1학년 여름 내내,
나는 발음 연습, 긴 영어 대사 외우기, 무대 동선, 억양, 표정까지
전혀 해보지 않았던 일들을 새롭게 경험하게 되었다.
모든 게 낯설고 버거웠지만, 이상하게 재미있고 신기했다.
하지만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
바로 대사 외우기.
양이 많아서,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도 완벽히 외우지 못했다.
다행히 상대 배우였던 선배의 재치 있는 애드리브 덕분에
무사히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조용하고 수줍은 성격이었던 나는
연극 연습을 하면서 조금씩 변해갔다.
솔로 조명을 받으며 혼자 독백을 하는 장면에서도
떨리지 않았고, 수줍지도 않았다.
참 이상했다.
그저 여름 내내 연습했을 뿐인데,
마치 내가 아닌 다른 내가 되어 있는 듯했다.
영어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 사랑은 내 성격까지도 조금씩 활발하게 바꾸고 있었다.
“다음엔 뭘 할 수 있을까?”
나에게 그런 기대가 생긴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대학 2학년 여름방학,
단짝 친구와 유럽 배낭여행을 가기로 계획했다.
알바를 하며 여행 경비를 모았고,
여행 책자에 줄을 치고 메모를 하며
30일이 넘는 여정을 세심하게 준비했다.
이제 진짜 영어를 사용할 시간이었다.
나는 주로 듣고, 친구는 내가 들은 걸 말해주었다.
우리는 서로의 귀와 입이 되었다.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기차 안에서 싱가포르에서 온 또래 친구 두 명을 만났다.
간단히 소개를 주고받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도했지만
곧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말을 알아듣기가 어려웠고,
우리도 그들도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정적 속에서 우리는 멋쩍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우리는 그 시간을 고마워하게 되었다.
‘진짜 영어를 공부해야겠구나.’
영어를 진심으로 마주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배낭여행은 나에게 큰 전환점이었다.
새로운 도시, 낯선 언어, 다른 음식과 예절,
이 모든 것이 나의 시야를, 사고를,
그리고 영어를 대하는 마음까지 완전히 확장시켜 주었다.
그 어색한 기차 안의 침묵은
나를 영어의 세계로 깊이 빠져들게 만든
소중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영어는 더 이상 책 속 언어가 아니었다.
삶을 통째로 바꾸는, 살아 있는 언어가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