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한 영어에서, 나를 찾아가는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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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 어색한 영어에서, 나를 찾아가는 여정

 

배낭여행.
그 자유롭고 낭만적인 단어 안에는
사실 ‘어색함’이라는 조용한 그림자가 숨어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혀끝에서 맴돌기만 했고,
‘Excuse me’ 하나 꺼내기까지
숨을 몇 번이나 들이쉬었다.
내 마음과 말 사이엔 낯선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나를 자극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진짜 영어를 배워야겠다.”

연수를 결심했다.
우선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했다.
이른 새벽, 피곤한 몸을 이끌고도
마음만은 들떠 있었다.
영어연수라는 새로운 여정의 티켓을
조금씩 손에 쥐고 있다는 기분.

이미 다녀온 친구의 조언을 받아
지역과 학교를 정했고,
드디어 출국 날이 다가왔다.

@pexels by Jason Toevs@pexels by Jason Toevs

혼자 타는 첫 비행기,
처음 만나는 낯선 이의 집에서의 홈스테이,
새로운 언어, 새로운 문화, 새로운 하루.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나는 믿었다.
‘나는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결과를 가지고 돌아오자.’

그리고 정말,
좋은 홈스테이 아주머니를 만났고,
친절한 선생님들과 따뜻한 친구들이 나를 반겨줬다.
마치 나를 위한 무대가 준비된 것처럼.
이제 나는 그 무대에서 연기를 시작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일본인 친구를 사귀었다.
둘 다 영어가 모국어는 아니었기에
실수해도 부담 없이 웃으며 넘어갈 수 있었다.
그 친구와 보내는 시간은
언어 연습이면서도 마음을 나누는 진짜 대화였다.
친해지는 속도만큼 영어도 조금씩 자연스러워졌다.

주말이면 교회에 갔다.
새로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여행도 함께 다니며
조금씩 낯선 공간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
한국어를 최대한 쓰지 않으려 애썼고,
그만큼 영어가 내 안으로 들어오는 속도도 빨라졌다.

수업 시간엔 선생님께 발음 교정을 요청했고,
집에서는 홈스테이 아주머니에게
사소한 표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질문했다.
일본인 친구와는 말 그대로 영어로 살아갔다.

매주 화요일은 ‘영화의 날’이었다.
영화관 입장료가 놀라울 만큼 저렴했던 날.
영화를 보고, 영어를 듣고,
스크린 속 이야기를 따라 상상하고
내 말로 흉내내 보던 시간.
그 하루가 한 편의 수업이었고,
하루의 휴식이었다.

@pexels by Jay Brand@pexels by Jay Brand

여름엔 공원에서 무료 셰익스피어 연극이 열렸다.
잔디에 앉아 햇살과 함께 즐기던 영어 연극.
언어를 귀로만 듣는 게 아니라,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지역 축제도 빼놓을 수 없었다.
체리 한 봉지를 1달러에 사서
주머니 가득 넣고 천천히 걷던 거리.
그 모든 순간이,
말보다 깊은 영어 공부였다.

그렇게 어느덧
귀국 날짜가 다가왔다.
‘이제 좀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쉬움이 진하게 밀려왔다.

하지만 그 아쉬움은
또 다른 기회로 이어졌다.

@pexels by Nick Kwan@pexels by Nick Kwan

복학 후, 원어민 교수님의 소개로
미국 인턴십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번엔 일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돈도 벌고,
공부도 할 수 있는 기회.

그곳에서 만난 곳이 바로 Lake Tahoe.

맑고 푸른 물,
작지만 깊은 그 호수는
내가 진짜 영어를 ‘쓰며 살아가는’ 공간이 되어주었다.

@pexels by Garrett johnson@pexels by Garrett johnson

 처음에 Harrah’s Hotel의 아케이드에서 일했다.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관광객부터 현지인까지
수많은 억양과 속도의 영어가
나를 스쳐 지나갔다.

처음엔 어려웠다.
하지만 모르는 표현은 적어두고
쉬는 시간에 동료에게 물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내가 쓰는 영어의 ‘톤’이 생겼다.

미국 친구들과는
스페인어를 섞어가며 대화하기도 했고,
현지 직원들과는 일상의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가까워졌다.

이제 영어는 더 이상
시험을 위한 언어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마음을 듣고
나의 이야기를 전하는 언어가 되었다.

그 여름,
나는 중고차를 샀고
운전면허 실기시험을 준비하며
진짜 현지인처럼 살았다.

길을 잃은 날도 있었고,
고객과 오해로 눈물 흘린 날도 있었지만
그 모든 순간들이
내 안의 ‘작은 서울’을 깨고
‘조금 더 넓은 나’를 만들어주었다.

그때 만난 친구들과는
지금도 SNS로 안부를 나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은 여전히 나에게
영어를 말하는 언어가 아니라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언어로 만들어 준
소중한 사람들이다.

@pexels by Roberto Nickson@pexels by Roberto Nick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