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영어라는 이름의 첫사랑

영어가 어렵다구요?
왜요?

혹시, 영어를 사랑해 본 적은 있으신가요?

나는 올해 쉰이 되었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영어’는 여전히 내 일상이다.

처음 영어를 만난 건 중학교 1학년.
알파벳도, 파닉스도 몰랐던 내가
영어를 처음 들은 순간은,
마치 사랑에 빠지는 순간처럼 강렬했다.

담임 선생님은 젊고 예쁜 처녀 선생님이셨다.
첫 시간, 웃으며 말하셨다.

“Good morning, everyone!”

@pexels by Gru@pexels by Gru

그 한마디가… 너무 아름다웠다.
영화에서 듣던 영어와는 전혀 달랐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매 수업이 기다려졌다.

나는 조용한 아이였다.
눈에 잘 띄지도, 손을 번쩍 들지도 않았다.
그런데 영어시간만큼은 달랐다.
두근거렸고, 설렜고,
조금이라도 더 잘하고 싶었다.

영어가 내게 처음으로 **“하고 싶다”**는 마음을 준 과목이었다.
그래서 꾸준히 했고,
그래서 더 좋아졌고,
그래서 결국, 영어로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다는 마음까지 자랐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되었다.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고,
영어로 소통하는 캐나다 남편과 사랑에 빠졌고,
지금도 영어를 매일 듣고, 말하고, 배우며 살아간다.

@pexels by Alexander Dummer@pexels by Alexander Dummer

가끔 생각한다.
만약 그날,
선생님의 목소리가 아름답지 않았다면
영화 속 영어가 낯설고 무서웠다면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영어가 어렵게 느껴질 때면,
그 시절을 떠올린다.
좋아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그날의 나를.

영어가 어렵다고요?
그러면… 한번 사랑해 보세요.
아마 모든 게 조금 달라질 거예요. �

@pexels by cottonbro studio@pexels by cottonbro studio

2편. 여름, 무대, 그리고 어색한 기차 안의 침묵

@pexels by saad alawi@pexels by saad alawi

영어와 첫사랑 같은 시절을 보내고,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어딘가에는 꼭 소속되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던 그때,
나는 얼떨결에 영어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무더웠던 1학년 여름 내내,
나는 발음 연습, 긴 영어 대사 외우기, 무대 동선, 억양, 표정까지
전혀 해보지 않았던 일들을 새롭게 경험하게 되었다.
모든 게 낯설고 버거웠지만, 이상하게 재미있고 신기했다.

하지만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
바로 대사 외우기.
양이 많아서,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도 완벽히 외우지 못했다.
다행히 상대 배우였던 선배의 재치 있는 애드리브 덕분에
무사히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조용하고 수줍은 성격이었던 나는
연극 연습을 하면서 조금씩 변해갔다.
솔로 조명을 받으며 혼자 독백을 하는 장면에서도
떨리지 않았고, 수줍지도 않았다.
참 이상했다.
그저 여름 내내 연습했을 뿐인데,
마치 내가 아닌 다른 내가 되어 있는 듯했다.

영어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 사랑은 내 성격까지도 조금씩 활발하게 바꾸고 있었다.
“다음엔 뭘 할 수 있을까?”
나에게 그런 기대가 생긴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pexels by Hannu Rainio@pexels by Hannu Rainio

대학 2학년 여름방학,
단짝 친구와 유럽 배낭여행을 가기로 계획했다.
알바를 하며 여행 경비를 모았고,
여행 책자에 줄을 치고 메모를 하며
30일이 넘는 여정을 세심하게 준비했다.

이제 진짜 영어를 사용할 시간이었다.
나는 주로 듣고, 친구는 내가 들은 걸 말해주었다.
우리는 서로의 귀와 입이 되었다.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기차 안에서 싱가포르에서 온 또래 친구 두 명을 만났다.
간단히 소개를 주고받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도했지만
곧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말을 알아듣기가 어려웠고,
우리도 그들도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정적 속에서 우리는 멋쩍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우리는 그 시간을 고마워하게 되었다.
‘진짜 영어를 공부해야겠구나.’
영어를 진심으로 마주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배낭여행은 나에게 큰 전환점이었다.
새로운 도시, 낯선 언어, 다른 음식과 예절,
이 모든 것이 나의 시야를, 사고를,
그리고 영어를 대하는 마음까지 완전히 확장시켜 주었다.

그 어색한 기차 안의 침묵은
나를 영어의 세계로 깊이 빠져들게 만든
소중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영어는 더 이상 책 속 언어가 아니었다.
삶을 통째로 바꾸는, 살아 있는 언어가 되어가고 있었다.

@pexles by alexandre saraiva carniato@pexles by alexandre saraiva carniato

3편. 어색한 영어에서, 나를 찾아가는 여정

 

배낭여행.
그 자유롭고 낭만적인 단어 안에는
사실 ‘어색함’이라는 조용한 그림자가 숨어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혀끝에서 맴돌기만 했고,
‘Excuse me’ 하나 꺼내기까지
숨을 몇 번이나 들이쉬었다.
내 마음과 말 사이엔 낯선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나를 자극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진짜 영어를 배워야겠다.”

연수를 결심했다.
우선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했다.
이른 새벽, 피곤한 몸을 이끌고도
마음만은 들떠 있었다.
영어연수라는 새로운 여정의 티켓을
조금씩 손에 쥐고 있다는 기분.

이미 다녀온 친구의 조언을 받아
지역과 학교를 정했고,
드디어 출국 날이 다가왔다.

@pexels by Jason Toevs@pexels by Jason Toevs

혼자 타는 첫 비행기,
처음 만나는 낯선 이의 집에서의 홈스테이,
새로운 언어, 새로운 문화, 새로운 하루.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나는 믿었다.
‘나는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결과를 가지고 돌아오자.’

그리고 정말,
좋은 홈스테이 아주머니를 만났고,
친절한 선생님들과 따뜻한 친구들이 나를 반겨줬다.
마치 나를 위한 무대가 준비된 것처럼.
이제 나는 그 무대에서 연기를 시작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일본인 친구를 사귀었다.
둘 다 영어가 모국어는 아니었기에
실수해도 부담 없이 웃으며 넘어갈 수 있었다.
그 친구와 보내는 시간은
언어 연습이면서도 마음을 나누는 진짜 대화였다.
친해지는 속도만큼 영어도 조금씩 자연스러워졌다.

주말이면 교회에 갔다.
새로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여행도 함께 다니며
조금씩 낯선 공간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
한국어를 최대한 쓰지 않으려 애썼고,
그만큼 영어가 내 안으로 들어오는 속도도 빨라졌다.

수업 시간엔 선생님께 발음 교정을 요청했고,
집에서는 홈스테이 아주머니에게
사소한 표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질문했다.
일본인 친구와는 말 그대로 영어로 살아갔다.

매주 화요일은 ‘영화의 날’이었다.
영화관 입장료가 놀라울 만큼 저렴했던 날.
영화를 보고, 영어를 듣고,
스크린 속 이야기를 따라 상상하고
내 말로 흉내내 보던 시간.
그 하루가 한 편의 수업이었고,
하루의 휴식이었다.

@pexels by Jay Brand@pexels by Jay Brand

여름엔 공원에서 무료 셰익스피어 연극이 열렸다.
잔디에 앉아 햇살과 함께 즐기던 영어 연극.
언어를 귀로만 듣는 게 아니라,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지역 축제도 빼놓을 수 없었다.
체리 한 봉지를 1달러에 사서
주머니 가득 넣고 천천히 걷던 거리.
그 모든 순간이,
말보다 깊은 영어 공부였다.

그렇게 어느덧
귀국 날짜가 다가왔다.
‘이제 좀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쉬움이 진하게 밀려왔다.

하지만 그 아쉬움은
또 다른 기회로 이어졌다.

@pexels by Nick Kwan@pexels by Nick Kwan

복학 후, 원어민 교수님의 소개로
미국 인턴십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번엔 일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돈도 벌고,
공부도 할 수 있는 기회.

그곳에서 만난 곳이 바로 Lake Tahoe.

맑고 푸른 물,
작지만 깊은 그 호수는
내가 진짜 영어를 ‘쓰며 살아가는’ 공간이 되어주었다.

@pexels by Garrett johnson@pexels by Garrett johnson

 처음에 Harrah’s Hotel의 아케이드에서 일했다.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관광객부터 현지인까지
수많은 억양과 속도의 영어가
나를 스쳐 지나갔다.

처음엔 어려웠다.
하지만 모르는 표현은 적어두고
쉬는 시간에 동료에게 물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내가 쓰는 영어의 ‘톤’이 생겼다.

미국 친구들과는
스페인어를 섞어가며 대화하기도 했고,
현지 직원들과는 일상의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가까워졌다.

이제 영어는 더 이상
시험을 위한 언어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마음을 듣고
나의 이야기를 전하는 언어가 되었다.

그 여름,
나는 중고차를 샀고
운전면허 실기시험을 준비하며
진짜 현지인처럼 살았다.

길을 잃은 날도 있었고,
고객과 오해로 눈물 흘린 날도 있었지만
그 모든 순간들이
내 안의 ‘작은 서울’을 깨고
‘조금 더 넓은 나’를 만들어주었다.

그때 만난 친구들과는
지금도 SNS로 안부를 나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은 여전히 나에게
영어를 말하는 언어가 아니라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언어로 만들어 준
소중한 사람들이다.

@pexels by Roberto Nickson@pexels by Roberto Nickson

4편. 가르치며 배우는 시간

영어 연극, 배낭여행, 어학연수와 인턴십을 지나, 영어는 어느새 내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나의 진로도 자연스레 영어를 가르치는 방향으로 흘러갔죠.

처음 영어를 가르쳤을 때,

나는 정말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가르칠 수 있을지,

그 확신이 없었습니다.

영어를 좋아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을 뿐,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죠.

그러나 수업 시간,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하나하나 따라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깊고 따뜻한 존재들이었고, 내게는 상상할 수 없는 에너지를 주었죠.

@pexels by Cafer SEVİNÇ

기억에 남는 순간이 하나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고등학생,

그는 초등학생 때 내가 가르쳤던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는 내게 이렇게 말했죠.

 “선생님, 정말 감사해요. 지금은 학원 안 다니고 혼자서 영어 공부를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영어를 즐기고 있었고,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습니다.

그 아이가 자신의 방식대로, 즐겁게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기뻤습니다.

또 다른 어르신은,

 “선생님, 영화 대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너무 신기해요.”

라고 말씀하시며 웃으셨어요. 그 어르신이 그렇게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며, 나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내가 가르친 영어로 누군가가 삶에서 변화를 느끼고, 자신감을 찾는다는 건 정말 보람 있는 일이죠.

학생들이 나에게 주는 이 기쁨과 감사는 언제나 내 삶에 달콤한 양념처럼 스며들어, 나를 더 풍요롭게 만듭니다.

이제는 줌 화면 너머로 멀리 있는 학생들을 만납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점차 그들 역시 나에게 많은 에너지를 주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화면 속에서도 여전히 반짝이는 그들의 눈빛은 나에게 끊임없이 길을 밝혀주는 빛이 되어주죠.

 나는 그 빛 속에서 길을 찾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수업을 준비하면서, 나는 늘 묻습니다.

 ‘오늘은 어떻게 하면 더 즐겁고 자연스럽게 영어를 배울 수 있을까?’

그리고 수업이 끝나면 나 자신에게 되묻습니다.

 ‘오늘 내가 아이들에게 배운 것은 무엇일까?’

작은 손짓으로 영어를 배우며 깔깔대는 유치원생들,
아이처럼 즐겁게 영어를 익히는 초등학생들,
때로는 까칠해도 목표를 위해 끝까지 달려가는 중고등학생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새로운 꿈을 꾸게 된 엄마들,
그리고 이제야 여유를 갖고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어르신들.

그들 각자의 삶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웁니다.

어떤 이는 나에게 ‘조금 느려도 괜찮다’는 걸,
어떤 이는 ‘틀려도 계속 해보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어떤 이는 ‘배움은 언제나 따뜻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었습니다.

@pexels by Pixabay

이제 나는 영어를 가르치며, 학생들로부터 그들만의 삶의 태도와 경험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배움 속에서 나는 점점 자라갑니다.

학생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것 같지만, 사실 나도 그들을 통해 끊임없이 배우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학생들 앞에 섭니다.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나도 그들과 함께 배우고, 성장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의 빛을 따라가며, 나도 내 길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1편: 영어라는 이름의 첫사랑

영어가 어렵다구요?
왜요?

혹시, 영어를 사랑해 본 적은 있으신가요?

나는 올해 쉰이 되었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영어’는 여전히 내 일상이다.

처음 영어를 만난 건 중학교 1학년.
알파벳도, 파닉스도 몰랐던 내가
영어를 처음 들은 순간은,
마치 사랑에 빠지는 순간처럼 강렬했다.

담임 선생님은 젊고 예쁜 처녀 선생님이셨다.
첫 시간, 웃으며 말하셨다.

“Good morning, everyone!”

@pexels by Gru@pexels by Gru

그 한마디가… 너무 아름다웠다.
영화에서 듣던 영어와는 전혀 달랐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매 수업이 기다려졌다.

나는 조용한 아이였다.
눈에 잘 띄지도, 손을 번쩍 들지도 않았다.
그런데 영어시간만큼은 달랐다.
두근거렸고, 설렜고,
조금이라도 더 잘하고 싶었다.

영어가 내게 처음으로 **“하고 싶다”**는 마음을 준 과목이었다.
그래서 꾸준히 했고,
그래서 더 좋아졌고,
그래서 결국, 영어로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다는 마음까지 자랐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되었다.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고,
영어로 소통하는 캐나다 남편과 사랑에 빠졌고,
지금도 영어를 매일 듣고, 말하고, 배우며 살아간다.

@pexels by Alexander Dummer@pexels by Alexander Dummer

가끔 생각한다.
만약 그날,
선생님의 목소리가 아름답지 않았다면
영화 속 영어가 낯설고 무서웠다면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영어가 어렵게 느껴질 때면,
그 시절을 떠올린다.
좋아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그날의 나를.

영어가 어렵다고요?
그러면… 한번 사랑해 보세요.
아마 모든 게 조금 달라질 거예요. �

@pexels by cottonbro studio@pexels by cottonbro studio

2편. 여름, 무대, 그리고 어색한 기차 안의 침묵

@pexels by saad alawi@pexels by saad alawi

영어와 첫사랑 같은 시절을 보내고,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어딘가에는 꼭 소속되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던 그때,
나는 얼떨결에 영어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무더웠던 1학년 여름 내내,
나는 발음 연습, 긴 영어 대사 외우기, 무대 동선, 억양, 표정까지
전혀 해보지 않았던 일들을 새롭게 경험하게 되었다.
모든 게 낯설고 버거웠지만, 이상하게 재미있고 신기했다.

하지만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
바로 대사 외우기.
양이 많아서,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도 완벽히 외우지 못했다.
다행히 상대 배우였던 선배의 재치 있는 애드리브 덕분에
무사히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조용하고 수줍은 성격이었던 나는
연극 연습을 하면서 조금씩 변해갔다.
솔로 조명을 받으며 혼자 독백을 하는 장면에서도
떨리지 않았고, 수줍지도 않았다.
참 이상했다.
그저 여름 내내 연습했을 뿐인데,
마치 내가 아닌 다른 내가 되어 있는 듯했다.

영어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 사랑은 내 성격까지도 조금씩 활발하게 바꾸고 있었다.
“다음엔 뭘 할 수 있을까?”
나에게 그런 기대가 생긴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pexels by Hannu Rainio@pexels by Hannu Rainio

대학 2학년 여름방학,
단짝 친구와 유럽 배낭여행을 가기로 계획했다.
알바를 하며 여행 경비를 모았고,
여행 책자에 줄을 치고 메모를 하며
30일이 넘는 여정을 세심하게 준비했다.

이제 진짜 영어를 사용할 시간이었다.
나는 주로 듣고, 친구는 내가 들은 걸 말해주었다.
우리는 서로의 귀와 입이 되었다.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기차 안에서 싱가포르에서 온 또래 친구 두 명을 만났다.
간단히 소개를 주고받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도했지만
곧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말을 알아듣기가 어려웠고,
우리도 그들도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정적 속에서 우리는 멋쩍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우리는 그 시간을 고마워하게 되었다.
‘진짜 영어를 공부해야겠구나.’
영어를 진심으로 마주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배낭여행은 나에게 큰 전환점이었다.
새로운 도시, 낯선 언어, 다른 음식과 예절,
이 모든 것이 나의 시야를, 사고를,
그리고 영어를 대하는 마음까지 완전히 확장시켜 주었다.

그 어색한 기차 안의 침묵은
나를 영어의 세계로 깊이 빠져들게 만든
소중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영어는 더 이상 책 속 언어가 아니었다.
삶을 통째로 바꾸는, 살아 있는 언어가 되어가고 있었다.

@pexles by alexandre saraiva carniato@pexles by alexandre saraiva carniato

3편. 어색한 영어에서, 나를 찾아가는 여정

 

배낭여행.
그 자유롭고 낭만적인 단어 안에는
사실 ‘어색함’이라는 조용한 그림자가 숨어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혀끝에서 맴돌기만 했고,
‘Excuse me’ 하나 꺼내기까지
숨을 몇 번이나 들이쉬었다.
내 마음과 말 사이엔 낯선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나를 자극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진짜 영어를 배워야겠다.”

연수를 결심했다.
우선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했다.
이른 새벽, 피곤한 몸을 이끌고도
마음만은 들떠 있었다.
영어연수라는 새로운 여정의 티켓을
조금씩 손에 쥐고 있다는 기분.

이미 다녀온 친구의 조언을 받아
지역과 학교를 정했고,
드디어 출국 날이 다가왔다.

@pexels by Jason Toevs@pexels by Jason Toevs

혼자 타는 첫 비행기,
처음 만나는 낯선 이의 집에서의 홈스테이,
새로운 언어, 새로운 문화, 새로운 하루.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나는 믿었다.
‘나는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결과를 가지고 돌아오자.’

그리고 정말,
좋은 홈스테이 아주머니를 만났고,
친절한 선생님들과 따뜻한 친구들이 나를 반겨줬다.
마치 나를 위한 무대가 준비된 것처럼.
이제 나는 그 무대에서 연기를 시작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일본인 친구를 사귀었다.
둘 다 영어가 모국어는 아니었기에
실수해도 부담 없이 웃으며 넘어갈 수 있었다.
그 친구와 보내는 시간은
언어 연습이면서도 마음을 나누는 진짜 대화였다.
친해지는 속도만큼 영어도 조금씩 자연스러워졌다.

주말이면 교회에 갔다.
새로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여행도 함께 다니며
조금씩 낯선 공간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
한국어를 최대한 쓰지 않으려 애썼고,
그만큼 영어가 내 안으로 들어오는 속도도 빨라졌다.

수업 시간엔 선생님께 발음 교정을 요청했고,
집에서는 홈스테이 아주머니에게
사소한 표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질문했다.
일본인 친구와는 말 그대로 영어로 살아갔다.

매주 화요일은 ‘영화의 날’이었다.
영화관 입장료가 놀라울 만큼 저렴했던 날.
영화를 보고, 영어를 듣고,
스크린 속 이야기를 따라 상상하고
내 말로 흉내내 보던 시간.
그 하루가 한 편의 수업이었고,
하루의 휴식이었다.

@pexels by Jay Brand@pexels by Jay Brand

여름엔 공원에서 무료 셰익스피어 연극이 열렸다.
잔디에 앉아 햇살과 함께 즐기던 영어 연극.
언어를 귀로만 듣는 게 아니라,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지역 축제도 빼놓을 수 없었다.
체리 한 봉지를 1달러에 사서
주머니 가득 넣고 천천히 걷던 거리.
그 모든 순간이,
말보다 깊은 영어 공부였다.

그렇게 어느덧
귀국 날짜가 다가왔다.
‘이제 좀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쉬움이 진하게 밀려왔다.

하지만 그 아쉬움은
또 다른 기회로 이어졌다.

@pexels by Nick Kwan@pexels by Nick Kwan

복학 후, 원어민 교수님의 소개로
미국 인턴십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번엔 일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돈도 벌고,
공부도 할 수 있는 기회.

그곳에서 만난 곳이 바로 Lake Tahoe.

맑고 푸른 물,
작지만 깊은 그 호수는
내가 진짜 영어를 ‘쓰며 살아가는’ 공간이 되어주었다.

@pexels by Garrett johnson@pexels by Garrett johnson

 처음에 Harrah’s Hotel의 아케이드에서 일했다.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관광객부터 현지인까지
수많은 억양과 속도의 영어가
나를 스쳐 지나갔다.

처음엔 어려웠다.
하지만 모르는 표현은 적어두고
쉬는 시간에 동료에게 물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내가 쓰는 영어의 ‘톤’이 생겼다.

미국 친구들과는
스페인어를 섞어가며 대화하기도 했고,
현지 직원들과는 일상의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가까워졌다.

이제 영어는 더 이상
시험을 위한 언어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마음을 듣고
나의 이야기를 전하는 언어가 되었다.

그 여름,
나는 중고차를 샀고
운전면허 실기시험을 준비하며
진짜 현지인처럼 살았다.

길을 잃은 날도 있었고,
고객과 오해로 눈물 흘린 날도 있었지만
그 모든 순간들이
내 안의 ‘작은 서울’을 깨고
‘조금 더 넓은 나’를 만들어주었다.

그때 만난 친구들과는
지금도 SNS로 안부를 나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은 여전히 나에게
영어를 말하는 언어가 아니라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언어로 만들어 준
소중한 사람들이다.

@pexels by Roberto Nickson@pexels by Roberto Nickson

4편. 가르치며 배우는 시간

영어 연극, 배낭여행, 어학연수와 인턴십을 지나, 영어는 어느새 내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나의 진로도 자연스레 영어를 가르치는 방향으로 흘러갔죠.

처음 영어를 가르쳤을 때,

나는 정말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가르칠 수 있을지,

그 확신이 없었습니다.

영어를 좋아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을 뿐,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죠.

그러나 수업 시간,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하나하나 따라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깊고 따뜻한 존재들이었고, 내게는 상상할 수 없는 에너지를 주었죠.

@pexels by Cafer SEVİNÇ

기억에 남는 순간이 하나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고등학생,

그는 초등학생 때 내가 가르쳤던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는 내게 이렇게 말했죠.

 “선생님, 정말 감사해요. 지금은 학원 안 다니고 혼자서 영어 공부를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영어를 즐기고 있었고,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습니다.

그 아이가 자신의 방식대로, 즐겁게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기뻤습니다.

또 다른 어르신은,

 “선생님, 영화 대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너무 신기해요.”

라고 말씀하시며 웃으셨어요. 그 어르신이 그렇게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며, 나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내가 가르친 영어로 누군가가 삶에서 변화를 느끼고, 자신감을 찾는다는 건 정말 보람 있는 일이죠.

학생들이 나에게 주는 이 기쁨과 감사는 언제나 내 삶에 달콤한 양념처럼 스며들어, 나를 더 풍요롭게 만듭니다.

이제는 줌 화면 너머로 멀리 있는 학생들을 만납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점차 그들 역시 나에게 많은 에너지를 주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화면 속에서도 여전히 반짝이는 그들의 눈빛은 나에게 끊임없이 길을 밝혀주는 빛이 되어주죠.

 나는 그 빛 속에서 길을 찾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수업을 준비하면서, 나는 늘 묻습니다.

 ‘오늘은 어떻게 하면 더 즐겁고 자연스럽게 영어를 배울 수 있을까?’

그리고 수업이 끝나면 나 자신에게 되묻습니다.

 ‘오늘 내가 아이들에게 배운 것은 무엇일까?’

작은 손짓으로 영어를 배우며 깔깔대는 유치원생들,
아이처럼 즐겁게 영어를 익히는 초등학생들,
때로는 까칠해도 목표를 위해 끝까지 달려가는 중고등학생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새로운 꿈을 꾸게 된 엄마들,
그리고 이제야 여유를 갖고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어르신들.

그들 각자의 삶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웁니다.

어떤 이는 나에게 ‘조금 느려도 괜찮다’는 걸,
어떤 이는 ‘틀려도 계속 해보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어떤 이는 ‘배움은 언제나 따뜻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었습니다.

@pexels by Pixabay

이제 나는 영어를 가르치며, 학생들로부터 그들만의 삶의 태도와 경험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배움 속에서 나는 점점 자라갑니다.

학생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것 같지만, 사실 나도 그들을 통해 끊임없이 배우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학생들 앞에 섭니다.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나도 그들과 함께 배우고, 성장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의 빛을 따라가며, 나도 내 길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1편: 영어라는 이름의 첫사랑

영어가 어렵다구요?
왜요?

혹시, 영어를 사랑해 본 적은 있으신가요?

나는 올해 쉰이 되었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영어’는 여전히 내 일상이다.

처음 영어를 만난 건 중학교 1학년.
알파벳도, 파닉스도 몰랐던 내가
영어를 처음 들은 순간은,
마치 사랑에 빠지는 순간처럼 강렬했다.

담임 선생님은 젊고 예쁜 처녀 선생님이셨다.
첫 시간, 웃으며 말하셨다.

“Good morning, everyone!”

@pexels by Gru@pexels by Gru

그 한마디가… 너무 아름다웠다.
영화에서 듣던 영어와는 전혀 달랐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매 수업이 기다려졌다.

나는 조용한 아이였다.
눈에 잘 띄지도, 손을 번쩍 들지도 않았다.
그런데 영어시간만큼은 달랐다.
두근거렸고, 설렜고,
조금이라도 더 잘하고 싶었다.

영어가 내게 처음으로 **“하고 싶다”**는 마음을 준 과목이었다.
그래서 꾸준히 했고,
그래서 더 좋아졌고,
그래서 결국, 영어로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다는 마음까지 자랐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되었다.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고,
영어로 소통하는 캐나다 남편과 사랑에 빠졌고,
지금도 영어를 매일 듣고, 말하고, 배우며 살아간다.

@pexels by Alexander Dummer@pexels by Alexander Dummer

가끔 생각한다.
만약 그날,
선생님의 목소리가 아름답지 않았다면
영화 속 영어가 낯설고 무서웠다면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영어가 어렵게 느껴질 때면,
그 시절을 떠올린다.
좋아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그날의 나를.

영어가 어렵다고요?
그러면… 한번 사랑해 보세요.
아마 모든 게 조금 달라질 거예요. �

@pexels by cottonbro studio@pexels by cottonbro studio

2편. 여름, 무대, 그리고 어색한 기차 안의 침묵

@pexels by saad alawi@pexels by saad alawi

영어와 첫사랑 같은 시절을 보내고,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어딘가에는 꼭 소속되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던 그때,
나는 얼떨결에 영어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무더웠던 1학년 여름 내내,
나는 발음 연습, 긴 영어 대사 외우기, 무대 동선, 억양, 표정까지
전혀 해보지 않았던 일들을 새롭게 경험하게 되었다.
모든 게 낯설고 버거웠지만, 이상하게 재미있고 신기했다.

하지만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
바로 대사 외우기.
양이 많아서,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도 완벽히 외우지 못했다.
다행히 상대 배우였던 선배의 재치 있는 애드리브 덕분에
무사히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조용하고 수줍은 성격이었던 나는
연극 연습을 하면서 조금씩 변해갔다.
솔로 조명을 받으며 혼자 독백을 하는 장면에서도
떨리지 않았고, 수줍지도 않았다.
참 이상했다.
그저 여름 내내 연습했을 뿐인데,
마치 내가 아닌 다른 내가 되어 있는 듯했다.

영어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 사랑은 내 성격까지도 조금씩 활발하게 바꾸고 있었다.
“다음엔 뭘 할 수 있을까?”
나에게 그런 기대가 생긴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pexels by Hannu Rainio@pexels by Hannu Rainio

대학 2학년 여름방학,
단짝 친구와 유럽 배낭여행을 가기로 계획했다.
알바를 하며 여행 경비를 모았고,
여행 책자에 줄을 치고 메모를 하며
30일이 넘는 여정을 세심하게 준비했다.

이제 진짜 영어를 사용할 시간이었다.
나는 주로 듣고, 친구는 내가 들은 걸 말해주었다.
우리는 서로의 귀와 입이 되었다.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기차 안에서 싱가포르에서 온 또래 친구 두 명을 만났다.
간단히 소개를 주고받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도했지만
곧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말을 알아듣기가 어려웠고,
우리도 그들도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정적 속에서 우리는 멋쩍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우리는 그 시간을 고마워하게 되었다.
‘진짜 영어를 공부해야겠구나.’
영어를 진심으로 마주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배낭여행은 나에게 큰 전환점이었다.
새로운 도시, 낯선 언어, 다른 음식과 예절,
이 모든 것이 나의 시야를, 사고를,
그리고 영어를 대하는 마음까지 완전히 확장시켜 주었다.

그 어색한 기차 안의 침묵은
나를 영어의 세계로 깊이 빠져들게 만든
소중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영어는 더 이상 책 속 언어가 아니었다.
삶을 통째로 바꾸는, 살아 있는 언어가 되어가고 있었다.

@pexles by alexandre saraiva carniato@pexles by alexandre saraiva carniato